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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찬양사역자 마이클 W 스미스의 '표적(sign)' 1장

표지판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수많은 곳에 표지판이 있습니다.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당신은 여러 가지 것들을 선전하는 광고판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종합상가를 선전하는 것에서부터 값이 싼 햄버거나 TV 프로그램을 선전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합니다. 그중에 어떤 교회는 주일에 교회에 나오도록 사람들을 초청하기 위해서 그 길가의 ‘광고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임스퀘어 광장에 잠시 멈추어 서서 캘빈 클라인, 토미 힐피거, GAP의 최신 상품을 선전하는 광고모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대한 광고판을 보지 않고서는 뉴욕에 가봤다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길을 따라 주변의 길가를 훓어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현재 공연되고 있는 다양한 브로드웨이의 작품들을 선전하는 극장간판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당신이 제가 태어나고 자랐던 곳과 같은 작은 도시에 거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표지판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간이음식점이나 채소가게, 그리고 주유소에서도 모두 당신의 눈을 사로잡는 광고판들을 붙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거리의 광고판들을 임대해서 사용하시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에 텍사스의 한 회사는 자비를 들여 운전자들의 마음을 영적인 분야로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에 관한 복음적인 메시지를 광고판에 싣기도 했었죠.) 그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알리시기 위해 그런 방식으로 표적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길을 끌기 위해 네온사인이나 번쩍거리는 불빛과 같은 것을 사용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단지 우리 주변에 그분이 존재하심을 나타내는 수없이 많은 표적들을 살펴보는 것뿐입니다. 그런 것들은 모든 곳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내가 테네시주 프랭클린에 있는 나의 농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을 때에나 혹은 동네를 지나 운전을 하고 갈 때에도 만약 단지 눈을 크게 떠보기만 해도 나는 하나님께서 바로 옆에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나는 자연에 친숙하기 때문에 그런 표적들을 잘 발견하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잠시 멈추어 서서 꽃의 향기를 맡거나 혹은 어떤 한적한 오후에는 활짝 핀 배나무의 냄새를 맡으면서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6년전 쯤 나는 제2의 고향과 같은 테네시주의 프랭클린을 운전을 하며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엔 활짝 핀 배나무가 만개해 있었습니다. 이 장면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하기도 전에 나는 좀더 가까이 가서 보려고 길가에 차를 대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좀 이상해지는 것 같더니 갑자기 눈물이 솟구쳐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곳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그곳에 어떤 ‘하나님의 시간’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개한 하나님의 창조물을 바라다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완전히 압도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창조하신 주님을 정말 놀랍도록 깨닫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우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참으로 놀라운 표적이 아닐까요?
지금 나는 당신에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무를 찾아서 눈물을 흘려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이 말을 들을 때에 당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답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자 노력하면서 번쩍이는 천둥번개라도 만나게 되리라고 예상하고 있을 때 우리 주변에 있는 작은 표적을 발견하게 되는 것과 같은 순간일 뿐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정말 놀라운 일이란 아주 사소한 일을 놓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 것들은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당신이 해야 되는 일이라곤 그저 밖으로 나아가 한번 걸어보는 것이구요.

천천히

오늘 늘 다니는 길에서 잠시 떠나 새로운 어딘가로 발걸음을 향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정말 느낄 수 있는 시간을 한번 가져보세요. 만약 주님이 그 놀라운 손길을 나뭇잎 하나 혹은 곤충 한 마리 혹은 깃털 하나에 새겨넣으셨다면 그분이 당신에게는 얼마나 많은 손길을 두고 계시는지를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표지판을 놓쳤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그분의 존재하심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데에만 표적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분께서 갈 길을 보여주실 때에도 그 표적들을 사용하신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격의 인도하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더 세밀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운전자가 반드시 보아야 하는 출구명이나 도로명에 대한 표지판을 놓쳐서 길을 잃어버리거나 혹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다시 되돌아가야 했던 경험이 있으십니까? 아마 그 운전자는 다른 것에 신경을 쓰느라고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주는 표지판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뭔가 도움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미국에서의 삶속에서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우리가 혼란스러움 속에 살고 있어서 인생을 너무 빠르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학교와 직장에서 달려와서 곧바로 야구연습에서부터 공연준비를 위해 쇼핑몰에 갔다 오는 것까지에 이르는 많은 활동들을 해야 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다중작업(multi-tasking)’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여러 가지 것들을 다 잘 해내고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단지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앞에 있는 올바른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일상생활의 수레바퀴와 같은 삶속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바꾸어주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우리는 중요한 표지판을 놓치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길을 만든다면 나는 모든 길모퉁이에다가 ‘천천히’라는 크고 노란 표지판을 세워놓을 것입니다. 조금 심하지 않느냐구요? 좋습니다. 어쩌면 이런 방법이 조금 지나치리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에게 천천히 가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다고 확신합니다. 나는 항상 주님께 주의를 집중하고 있지 않습니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내가 바쁜 삶속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놀라운 기회가 내 삶속에 다가오지요. 그리고는 내가 반드시 ‘아니오’라고 해야만 할 때에 ‘예’라고 말해버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당신에게도 익숙한 일이 아닐까요? 그것은 우리를 실족시키는 유혹의 함정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또한 결국에는 하나님과 그분이 정말로 행하기를 원하시는 일들에 대해서 어떠한 관심도 갖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힘든 역경을 통해 이러한 특별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교훈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나는 나이가 점점 더 들어가면서 더욱 쉽게 내가 어떤 사명으로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빠져버리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분명히 깨닫는 것은 만약 당신이 내가 겪었던 삶보다 좀더 빨리 그러한 교훈을 알 수 있다면 당신은 승리를 할 수 있으며 커다란 후회의 삶을 살게 되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물론 무엇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할지를 알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에 대해 ‘예’라고 말할 지를 결정해야만 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은 어떠한 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나는 당신의 상황에 대해서 구체적인 대답을 해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만약 당신이 차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분명 그 대답을 놓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도로위의 표지판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방향을 보여주시지만 그러나 만약 당신이 120킬로미터로 달려가고 있다면 그 표지판을 알아차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당신에게 갑자기 급정거를 시키시리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속도를 늦추고 표지판을 잘 살펴보는 것은 당신의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때로 그것들은 좀더 나이 많고 지혜로운 누군가를 통한 조언의 형태로 다가올 것입니다. 부모나 교회의 어른들, 그리고 영적으로 좀더 성숙한 친구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당신이 가야만 하는 방향을 보여주시는 데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즐거워할 수 있고 열정을 가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바로 그 방향에 있습니다.


천천히

당신이 타고난 재능과 능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당신을 무엇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까?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무엇을 잘한다고 말합니까? 당신은 어떤 일에서 열정을 느낍니까? 이러한 질문들이 당신의 부르심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말씀하신다고 생각하게 될 때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가 신뢰하고 내 삶에 중요한 조언을 준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통해서 모든 변화가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나에게는 때로는 따끔한 충고의 말이나 어떤 때에는 말 그대로 정말 일년 동안이나 나를 지지해주는 격려의 말을 전화로 해주는 멀리에서 사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돈 핀토 목사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만나서 숲 속을 오랜 동안 걷습니다. 그런 만남을 통해 그분은 지속적으로 나의 성장을 도와주고 격려해 줍니다. 나는 내 삶에 대해서 기꺼이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인격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을 가졌다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는 다음과 같은 아주 명확한 공식이 있습니다. 나는 많은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지요. 당신의 삶 속에는 당신을 고무시키고 책임있는 자로 설 수 있도록 붙들어 주는 누군가가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나의 경우와 같은 교회 목사님이나 혹은 멀리 살고 있는 친구가 아닐 수 있습니다. 가족도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어머니나 아버지가 어떤 현명한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주목하여 보십시오. 좀더 특별한 경우로 당신의 형제들이나 자매들은 어떻습니까? 지혜로운 사람이란 반드시 나이가 많이 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저는 항상 우리 아이들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게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소한 것일 수 있지만 그중 어떤 것은 편향적인 생각으로부터 탈피하는 무엇인가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다가와서 새로운 눈을 뜨게 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눈을 열어 주위를 살펴보게 해서 그것을 통해 당신은 표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자극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가고자 하는 바를 찾는 것은 계속적인 과정입니다. 음악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20년이 넘게 한 이래 지금 현재의 저의 가장 큰 도전은 여전히 내가 정말로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찾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나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해가 바뀔 때마다 (혹은 달이 바뀌고 날이 바뀔 때마다) 그 대답이 계속 달라지고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지속적으로 오늘 그분께서 내가 행하기를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기 위해 하나님과 함께 이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그렇게 하기만 하면 어쨌든지 간에 일은 일단 시작됩니다. 예라고 말해야 하는 일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그로 인해서 또한 역시 아니오라고 말해야만 하는 많은 일들이 생겨납니다. 만약 당신이 나를 좋아한다면 내가 할 수 있을 때에는 언제든지 도와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행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결국 감정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내가 단지 그 모든 것을 다 행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게 됩니다. 당신이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할 때에 당신은 결국 아무 것도 행하지 못하고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당신이 정말 행하라고 부르심을 받은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면 모든 사람도 잃게 됩니다.


전방의 우회로에 주의하세요.

일단 당신이 올바른 길로 들어서게 되었더라도 그 길이 항상 잘 포장된 길이기만 하리라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조금이라도 길에서 눈을 떼고 한눈을 팔게 될 수 있습니다. 아니면 혹 길에 움푹 파인 곳이나 예기치 못한 엔진의 문제로 당신이 계획한 여행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 돌아가거나 혹은 더 안전한 길로 가거나 아니면 더 편안한 길을 찾는 것이 좋을 거야” 당신은 이러한 내면의 소리를 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의심이 찾아온 것이라고 쉽게 생각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순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믿음이 얼마나 강하든지 간에 어떤 상황은 당신에게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라는 의문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결코 우리를 버리거나 떠나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삶이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나타날 때에는 마치 우리가 갑자기 홀로 된 것 같은 느낌을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실 그분은 결코 멀리 떠나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느끼기’ 어렵다고 생각할 바로 그 때에 다시 한번 더 당신이 해야하는 모든 일은 눈을 크게 뜨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그분이 바로 옆에 계시다는 증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너무 강력하게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심지어 이것에 대한 노래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처음 그 생각이 떠올랐을 때 조지 루카스의 스카이워커 랜치(역주: 캘리포니아주 지방의 마린 카운티의 골짜기에 가려진 웅장한 영상음향관련 시설)에서 녹음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아주 영적인 것을 노래하는 곡이었지요!). 나는 계속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이 노래는 단지 사람들이 자신들의 눈을 열고 삶의 여행 속에는 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표지판이 있음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 될 지도 모른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어떤 가사내용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순간 나는 그 노래에 ‘표적’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순식간에 창조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그 시설에 있는 동안 작업이 끝난 노래들을 정리하는 시간 동안에 새로운 노래가사를 계속해서 썼습니다. 주조정실 한가운데가 바로 내가 ‘표적’이라는 제목으로 노래들을 만들어낸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가사를 쓰고 내가 이전에 습작으로 만들어둔 것들 가운데서 몇 부분을 추려낸 멜로디를 붙여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년동안 우리는 이렇게 노래해왔습니다. “당신의 마음의 눈을 주님께로 여십시오” 함께 작업을 도와주었던 작사가인 폴 발로케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이와 동일하게 영적이었던 다른 곡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가 보기를 원하시는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달라고 간구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약 나에게 다른 도움이 필요하였다면 주변의 사람들이 아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거야.’
처음의 영감에도 불구하고 노랫말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처음 우리는 이전의 노래에서 몇 구절들을 교묘하게 따가지고 오는 것을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것을 다 지워버렸습니다. 다른 제작자들이 준 생각들도 다 제외시켰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그냥 들어맞지 않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가사의 내용들은 나의 큰 아들 20살된 리안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는 존번연의 고전소설인 천로역정에서 영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가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제가 뭔가를 발견한 것 같아요.” 나는 그의 눈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그 책을 오래 전에 읽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리안은 지금 현재 읽고 있는 중이었고 그 놀라운 책에 대해 정말로 깊은 묵상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가 왜 천로역정을 읽게 되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 책을 읽었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 일은 내가 어떤 한 노래를 쓰고자 했을 때 마침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 노래가 사람들이 믿음의 길을 가다가 낙심하였을 때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노래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나는 믿음의 길을 가면서 하나님이 자신들의 삶 속에 행하신 놀랍고도 굉장한 일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끊임없이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한번 나는 우리 주변에 바로 그러한 표적들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당신이 또 다른 질문을 갖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왜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우리에 대해서 그분의 사랑과 돌보심에 대한 생생한 표적을 보여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주님은 우리가 구하거나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모든 것을 이루셨고 또 그분이 이미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궁극적인 표적으로 세상에 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일을 행하고 계실까요? 나는 그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주님이 여전히 우리가 그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삶은 여전히 주님이 필요할 정도로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이 여전히 여기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표적들을 우리에게 보내십니다. 나는 이미 이것이 참인 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내가 계속해서 듣거나 보아야 하는 것으로 남아있습니다.


천천히

당신이 표적을 발견하지 못할 때 누가 그 표적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분의 사랑을 다시 기억나게 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환경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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