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정하는 문제보다는 미국에 처음 와서 어떤 점이 힘든지 먼저 물어봐 주셨고 또 저희의 어려운 상황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들을 같이 고민해주시고 기도해 주셨을 때"의 장면이 "교회를 결정하는 이슈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현재의 힘든 상황을 함께 공감해줄 때"로 이해가 되셨네요. 하지만 그것은 '공감'이기 보다는 '동행'의 은혜가 더 큽니다.
공감(sympathy)가 심리학적인 방법으로 성도들의 삶에 많이 자각되지만 사실 그것은 공감의 힘이 아니라 함께 '동행'해주려고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공감'해주시거나 '동일시'해주시거나 '경청'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동행'하시며 '능력'을 주시지만 그런 은혜는 심리학적인 용어인 '경청, 공감, 동일시'로 단순화됩니다. 항상 위로부터 내려오는 은혜를 사모해야 하고 그 은혜 속에 거할 때 그 은혜를 끼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감'의 효과로 생각하기 보다는 '동행'의 은혜로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성경적 상담에서는 심리학적인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무척 주의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입구를 찾는 것도 동일합니다. '경청, 공감, 동일시(인간중심주의)'의 방법을 사용해서 진입구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려고 하면서 진입구를 찾습니다.
다소 받아들이기 복잡한 내용일 수 있겠지만 앞으로의 공부를 생각해 보면서 심리학적인 영향이 아닌 성경적인 영향으로 새롭게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