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저술] 무의식 타령꿈을 꾸었다. 학교에 강사를 갔다. 수업이 시작되었는데도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았다. 웅성거리며 한무더기는 서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또 다른 무리들은 마치 내가 없는 것처럼 관심도 없이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준비물을 나누어 줘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 아예 수업이 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꿈속에서 담당자에게 불평을 한다. 수업을 할 수 없으니 이제부터는 오지 않겠다고. 앞으로의 계약도 지킬 수가 없겠노라고. 이런저런 불평을 계속 늘어 놓고 있었다.
꿈에서 깼다. 멍하다. 일어나 앉아서 기도하려고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집중이 되질 않는다. 생시에도 불평 고치려고 고심하는데, 꿈속에서도 불평증에 시달리다니... 목을 비틀고 잤는지 어깨와 목이 아프다. 어릴 때 자는 자세가 뒤틀리면 꿈자리가 시끄럽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래서 그랬나? 아무튼 기분이 찝찝하다. 자동적으로 '무의식이 복잡한가? 내면이 혼란스러운가?' 생각하며 성경을 들고 교회로 내려갔다.
예배당에 앉자 평안이 몰려온다. 조용히 기도를 시작했다. 또다시 전자동으로 무의식, 내면 등을 살피기 시작한다. 그 때 '아직도 무의식 타령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고 있음을 알았다. 마음을 살펴 내 마음(속사람)의 욕구(죄)를 회개하고 버리려고 하지 않고 무의식이 어쩌고 하면서 합리화 하려는 모습이 깨달아졌다. 죄를 버리기 싫은 건가?
존경과 지배, 유익의 욕구가 있어 멋드러진 수업을 해 보이고 싶은데, 그것이 안되니 두려움과 미움, 분노, 수치의 감정이 생긴게 아닌가? 학생들을 집중시킬 다른 시도를 해보지도 않고, 돌파해 나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단지 담당자에게 불평을 늘어 놓으며 도피를 선택한다. 내 삶의 모습이 드러난 것은 아닐까? 주님께 여쭙고 인도받기보다는 좀더 쉬운 불평과 비난을 선택하며 살아온 것 같다.
상담을 할때만 심리학적 요소를 제거할 것이 아니라 생각, 사상, 삶, 모든 부분에서 심리적 접근을 하지않고 욕구가 무엇인지, 감정은 또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은혜를 거쳐 변화된 삶으로 선순환의 길을 갈 수 있을텐데. 심리적 접근으로 죄를 합리화하고 사단의 잘못된 상담에 동의를 하고 살아 온 삶 가득이다. 여기까지 기도가 이르자 무엇인가 가로막혔던 것이 뻥 뚫린 느낌에 멍하던 상태가 사라졌다. '주님 감사합니다. 사고자체가 성경적으로 바뀌어야 함을 깨닫게 해주셔서...... 이 또한 은에서 찌끼를 제하고 순도를 높이는 길일진데.'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하늘나라가 점차 더 가까와 진다는 것이 아닐까. 요즈음 점점 이 땅보다 하나님나라에서의 삶을 준비해야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불안하고 두려운, 갈바를 알지 못하는 삶이 싫어서 이제껏 안전한 삶을 갈망하며 추구해 왔다. 제법 안전한 진지를 구축하고 안전지대에 이르렀다 싶은 이 시점에 주님은 거기서 나오라고 손짓하신다. 그리고 "그곳은 진정한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나를 따르고 나와 동행하는 것만이 진정한 안전지대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나올 수 있을까?
안전지대를 추구하며 살아온 삶을 우거진 나무의 삶으로 바꿀 시점이 된 것 같다. 나의 안전만 추구하는 삶에서 들판의 우거진 한그루 나무가 되어 피곤한 인생들이 쉬어가는 곳, 심심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야기 꽃을 피우는 곳, 배고픈이들이 허기를 채우는 곳, 동네 개구쟁이들이 재미있게 노는 그 나무 말이다.
말~도 안돼.
내가 무슨?
그렇지만
안전한 삶이 나에게 어림도 없었던 것처럼 혹시 우거진 나무로서의 삶이 인생 후반에?! 주님의 손에 올려드릴 뿐입니다.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 같은 제 후반전을......
간절한 소망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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