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조절의 문제는 종종 '통제불능'이라는 표현으로 묘사됩니다. 그래서 감정이 통제되지 못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됩니다. 이렇게 감정이 통제되지 못하는 상태는 다양한 문제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심한 거부감으로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기도 하고 격한 분노로 여러 가지 안좋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며 극도의 절망감으로 생명의 위협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며 그러한 안좋은 상태는 어려서부터의 익숙한 감정대처방법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어릴 때부터 감정을 잘 통제하지 못했을 때 성장한 이후에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서 필요한 이성적인 사고가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한 감정적인 표현을 통해서도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표를 성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안정적인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통제능력의 상실은 성인이 된 다음에도 이성적 사고를 하지 못하거나 문제해결이나 목표성취와 상관없는 기본생활습관 속에서의 문제점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그 결과에 여러 가지 책임과 보상이 따르기 때문에 악순환이 더욱 심해집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감정통제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을 괴로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이나 가족들이 그 괴로움을 떠안게 됩니다. 결국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게 됩니다.
'통제불능'상태의 문제점을 자각하고 그것을 바꾸려고 할 때 필요한 상담방향은 감정에서 이성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감정에 따른 신체적인 반응이나 표현을 자제 하고 이성적인 사고 속에서 신앙적인 방향과 선순환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자제력이나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자전거를 탈 때에도 손잡이를 잡지 않고 타는 것은 언제든지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에도 운전대를 붙잡지 않거나 브레이크, 혹은 악셀을 사용할 수 없다면 매우 큰 사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자신에 대한 자제력, 통제력을 잃어버리면 대형사고를 일으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은 어떤 감정에 주되게 이끌리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커지게 된 과거의 경험이 있는데 그 경험 속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원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원함을 생각하면서 이성적 사고로 넘어가고 그 다음에 그 이성적 사고에서 은혜의 소원을 찾아서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노력으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좋은 결심을 가질 수 있고 그 결심을 통해서 통제력을 회복하고 필요적절한 행동과 반응을 할 수 있습니다.
가인에게 하나님께서는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모든 감정조절의 문제를 가지고 있고 통제불능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해당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소원을 가져야 하는가를 자각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감정통제는 단순히 악순환을 없애기 위한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한 목적으로 실행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가인도 감정통제의 삶을 살았다면 그의 인생이 변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감정통제가 안되서 악순환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자기 자신이 변할 수 있는 구체적인 변화의 단계를 하나씩 가르쳐 주게 되면 통제불능이 되어서 한 순간의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그것을 평생 후회하면서 살아가는 자가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온전한 감정조절은 성령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필요한 일을 하려고 할 때에 성숙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문제에 대한 자각과 해결방법을 통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더욱 간절히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