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신처에서 보낸 달들> 장길수
많은 부모님들이 문제로 속 썩이는 자녀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너는 복에 겨워서 그런거라고, 배가 불러서 그렇다고...
너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것을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말이다.
가끔 나는 아프리카에서 기본적인 식량과 물이 없어 주리는 아이들,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북한주민들을 묵상하곤 한다.
기독교인으로서의 느껴야 할 고통받는 영혼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한편으로 느끼고
가난한 심령과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심령이 메마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혼인 마음에 그런 생동감이 혹은 잔상이 남아야지만
주님께서 부어주신 마음이 더 절실히 느껴지고 와닿기 때문인 것같다.
이 책도 내가 모르는 실상을 알고 내가 누리고 있는 은혜들이 값 없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고
힘을 내어 소원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읽었다고 볼 수 있다.
유익한 것, 편안한 것, 쾌락을 누리는 것
존경받는 것, 인정받는 것, 지배하려고 하는 것
지금도 압제받는 북한 주민과 아이들은
잘 먹고 잘 사는 남한 사람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욕구와 아주 최소한의 것을 바라면 살고 있다.
우리의 끝도 없는 욕구는 점점 높아져만 가는데
그들이 바라는 기준치가 우리와는 너무 나도 다른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주님의 계획을 생각나게 한다.
주님은 들판에 모인 오천명에 사람에게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일 수도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다.
너희가 가지고 있는 보잘 것 없는 양식, 떡 다섯개 물고기 두마리
나도 북한 아이들과 같이 크고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주님의 마음을 더욱 알고 주님의 길로 행하는 종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