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선지자(욘 4:1-3)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선지자(욘 4:1-3)

  

 (성경적 상담의 원리를 말씀 속에서 전하기 위해 소원교회에서 이루어졌던 상담설교내용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앗수르의 수도였던 니느웨 성읍으로 가서 그곳에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삶이었고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싫어했습니다. 그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 다른 곳으로 도망쳤습니다. 그가 처음 도망간 곳은 욥바였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거기서 배를 타고 계속해서 도망갔습니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다시스였는데 아마 그는 거기 있으면 하나님께서 더 이상 자신이 이 일을 하도록 부르시지는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다시스에 도착해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포기하시고 니느웨에는 다른 사람을 보내시든지 아니면 아무도 보내지 않으시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요나는 자신의 뜻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시스에 이르기 전에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풍랑이 일기 시작했을 때 요나는 모른 척하고 배 밑층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풍랑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나고 아우성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선장은 잠을 자고 있던 요나를 깨웠습니다. 육체적이면서 동시에 영적인 잠을 자고 있던 요나를 깨우면서 선장은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당신도 당신의 신을 불러서 우리를 이 어려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그에 대해서 그러겠다고 분명하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신은 하나님이었는데 그 하나님을 부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풍랑은 더욱 거세어져서 도저히 사람들이 헤쳐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중 도대체 누구 때문에 이런 풍랑이 오는 것일까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비를 뽑았는데 그 제비는 정확히 요나에게 걸렸습니다. 그제서야 요나는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이라고 실토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회개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자신이 바다에 빠져야, 자신이 죽어야 이 모든 일이 끝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는 요나를 바다에 빠트려서 죽게 하시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죄를 깨닫고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람들은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정말 그의 말대로 파도는 더욱 더 거세어지고 도저히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국 요나의 말대로 사람들은 그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곧 바다는 잔잔해 졌고 사람들은 커다란 충격 속에서 요나가 믿는 신인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떨었습니다. 바다에 빠진 요나는 이제 하나님의 손안에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요나가 하나님을 거역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불순종과 극단적인 선택 속에서 삶을 마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나를 죽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붙들어주셨고 그를 살리셨습니다. 그는 바다에 던져졌지만 물속에 잠기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커다란 물고기를 준비하셨고 물고기가 그를 삼켜서 뱃속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숨쉴 수 있었고 의식을 차릴 수 있었으며 하나님께 기도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지난 날에 대한 반성과 앞날에 대한 새로운 결심이 그에게서 나왔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온전한 소망이 그 자신의 입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리고 삼일 후에 그는 물고기 뱃속을 나와서 육지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요나의 삶을 보았을 때 그의 삶은 앞으로 평탄한 삶이 지속될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 회개를 했으니 앞으로는 죄짓지 않고 명령을 어기지 않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평안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그는 니느웨로 들어가 하나님 말씀대로 그 땅에 심판을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예상과는 달리 사람들은 너무나 빨리 회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애나 어른이나 전부 굵은 베를 입으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소문이 왕에게까지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니느웨 왕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듣고 나서는 얼른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앞아서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자라고 선포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요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니느웨 사람들은 강퍅해서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니느웨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의지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사람들의 기도와 니느웨 왕의 회개를 보시고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정말 화가 난 사람은 요나였습니다. 요나는 크게 분노하며 분통해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따지면서 기도했습니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욘4:2)"

  

그는 일이 그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다시스로 도망갔던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와서 결국에는 하나님 뜻대로 하기는 했는데 역시 예상대로 하나님은 니느웨를 용서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원수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가 하나님의 용서하심 때문에 다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욘4:3)"

  

차라리 죽여주옵소서! 그는 그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이렇게 뜻대로 안될 바에야 이렇게 분노로 가득하게 될 바에야 아예 죽어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선지자 일을 안할 수도 없고 그렇게 내버려두시지도 않고 그렇다고 선지자 일을 하자니 도저히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고 그러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이스라엘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한 사람으로서 요나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의 문제의 유형은 어떤 것입니까? 지금 그의 삶 속에서는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 요나의 모습은 정상적인 것입니까, 아니면 비정상적인 것입니까?

  

요나의 삶 속에는 반복되는 죄의 패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음의 패턴이며 악순환의 양식입니다. 그 패턴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살펴볼 때에 어떤 양식이 반복해서 일어나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죄로 인한 악한 결과이며 악한 행동으로 인해서 생긴 안좋은 결과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요나에게 있어서 잘못된 죄의 모습은 하나님과 뜻이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였지만 그는 하나님과 뜻이 맞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계속 어긋났습니다. 엉뚱한 길로 빠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애써 모른 척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지만 전혀 하나님의 선지자 같지 않게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뜻과 계획을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우리 같으면 그러한 요나를 당장 선지자 노릇을 그만두게 하고 당장 나가게 하고 당장 안보이게 할 텐데 신기하게도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차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선지자임을 아셨지만 또한 요나의 장점도 알고 계셨습니다. 요나가 잘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사실 요나가 선지자 되게 하신 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요나를 선지자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 바로 그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요나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점에 더 발전이 있어야 하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그것만 고치면 되고 그것만 변화되면 되고 그러면 완전해지고 완벽해집니다. 그 약한 부분이 치명적이라는 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보완만 된다면 요나는 더할 나위 없는 주님의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그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과 뜻이 안맞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적 상담에서는 '상황'을 볼 때 그 상황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상황을 재빨리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그것을 그대로 놔두고 바로 그 상황 속에서 각 사람이 무엇으로 인해 더욱 괴로워하는가를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 모든 것이 다 괴로운 것이 아니고 더욱 더 괴로운 점이 나타납니다. 그 부분을 통해 우리는 그 ‘힘든 상황’에 직접적으로 연관을 맺는 '악한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이 '힘든 상황'과 '악한 결과'에는 서로 연결점이 있습니다. 애초에 '힘든 상황'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닙니다. 혹은 아무런 이유 없이 '힘든 상황'이 그냥 생겼다 하더라도 이 '상황'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바로 '악한 결과'입니다. 이 '힘든 상황'과 '악한 결과'가 서로 영향을 주면서 계속해서 상황을 나쁘게 만들고 그로 인해서 계속 악한 결과가 생겨나게 만듭니다. ‘힘든 상황’으로 인해서 ‘악한 결과’가 생기고 ‘악한 결과’가 생겨서 다시 ‘힘든 상황’이 이어집니다. 이 둘은 서로 주고받으면서 계속 악순환되고 계속 커져갑니다. 그냥 놔두면 파국에 이를 때까지 이것이 커져가고 결국엔 정말 파국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괴로움이 있는 사람에게서 이러한 ‘힘든 상황’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그로 인해서 생기는 '악한 결과'가 무엇인가를 찾아보십시오. 다시스로 가던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풍랑'은 그냥 온 것이 아닙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려고 했던 '악한 결과'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시작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것은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 전에 있었던 맨 처음 ‘상황’때문에 생겼습니다. 우리가 본 이 본문에서 맨 처음 '상황'은 애초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연관된 '악한 결과'를 보면 요나에게 이전부터 어떤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니느웨에 대해서 요나는 하나님의 뜻과 충돌하고 있습니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일치하였을 수도 있지만 유독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감사함과 기뻐함으로 시키시는 일을 항상 순종함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거부감과 싫어함을 가지고 순종하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라고 하실 때 그는 다시스로 도망갔고 풍랑이 이는 배에서도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그냥 죽어버리려고 했습니다. 한번 진짜로 죽으려고 시도했었으니까 그 이후에 회개하고 다시 살아났어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늘 하는 말은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라고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보다도 자신을 선지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부르심보다도 그를 통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계획보다도 그가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자기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는 괴로워 못 견디겠으니 죽여달라고 죽고 싶다고 호소하면서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요나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보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런 요나를 하나님께서는 계속 어르고 달래시며 용납하십니다. 앞으로 우리는 그것을 계속 볼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신지, 얼마나 모든 것을 다 받아주시는지, 얼마나 반복해서 기회를 주시고 또 사랑해주시는지를 볼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요나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요나를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위로와 소망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나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았습니다. 그가 처한 ‘힘든 상황’과 그 속에서 일어난 ‘악한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면서 요나라는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해서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한 이해는 앞으로 그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을 깨달을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성경 속에 나타난 이러한 변화의 과정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 이 문제의 유형은 그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뜻이 맞지 않는다는  ‘합의의 유형’입니다. 그에게는 이런 ‘합의의 유형’의 문제가 있었고 그것이 끊임없이 힘든 상황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또한 '힘든 상황'과 '악한 결과'가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 지를 보았습니다. 이 둘은 매우 유기적입니다. '악한 결과'와는 전혀 상관없이 새롭게 시작되는 '힘든 상황'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냥 해프닝이고 일화이고 사건에 불과합니다.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상황을 선하게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늘 문제가 되는 것은 '힘든 상황'에 악하게 대응하는 방식입니다. 그것이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내고 악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고 그로 인해서 다시 더 큰 힘든 상황이 생기게 합니다.

  

이러한 연관관계를 잘 이해하셔서 우리의 삶에 생기는 모든 상황 속에서 악한 결과가 아니라 선한 결과를 나타낼 수 있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의 인과관계를 잘 살펴서 그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자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의 문제나 혹은 다른 사람의 문제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전한 이해를 통해 더욱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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