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편리하고 소통이 잘 된다고 스스로를 생각 하지만, 역설적으로 외로움을 호소 하고 있으며, 인간관계의 대한 고충이나 해소되는 서적들이 역설적으로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다.
전화 목소리 보단 카톡 문자가 더 편하며, 얼굴을 대면하기 보단 사진상으로 서로의 안부를 알고 묻는 시대이다. 이전에는 만나서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사정을 알리고 했다면, 이것이 모바일로 들어와 이제는 사진이나 구어체 식의 짧은 대화로 나눈다.
그러다 보니 관계는 피상적이 되어 버렸다. 또 깊이 있는 관계도 부담스럽다. 그렇지만, 또 외롭다.
나를 알아 주는 이도 없고 나를 찾아 주는 이도 없다. 하지만, 나 여기 잘 있어요 하고 알리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도 든다.
내가 다녀온 여행지를 말하기 보단 사진 몇장을 올리고 네트워크 친구의 좋아요!를 기다린다.
좋아요가 많으면 뭔가 내가 여행을 잘 다녀 온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시무룩해짐과 동시에 다른 사진들을 올리며 사람들의 관심을 기다린다.
이 현상속에 코로나위기로 더욱 사이가 각박해 짐을 느낀다. 사람들은 왜 인정받고 싶을까?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싶어 하고, 특히 여행사진을 올리며 뭔가를 자랑하고 싶어한다.
인정, 관심 이런것들은 왜 페이스북 창시자가 부자가 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정도의 큰 힘을 발휘하며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을 알리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의인에 대한 욕구라고 생각이 들었다.
본질적 죄인인 우리들은 날마다 누군가의 칭찬이나 인정을 들으면, 뭔가 내가 인생을 잘 살고 있다고 해석한다. 즉 자신의 허물이 가려지고, 죄인이라는 존재감에서 의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욕구가 개인 소셜 미디어의 사진들을 통해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날마다 우리 자신을 정죄하는 두려움에서 사람들의 좋아요 숫자가 그것을 상쇄시켜 주는 것이다. 하지만 진리로 의인이 된 것이 아니기에, 일시적이다. 작은 시작의 마약이 더 큰 강력한 양의 마약을 불러일으키듯. 이 감각을 유지해 나가려면 계속 누군가의 칭찬 혹은 예찬이 필요하다.
그래서 소셜 미디어에 중독이 되어 자신을 칭찬해줄 얼굴도 자주 보지 않는 서로 인간적인 교류가 많치 않은 사람들의 좋아요 숫자를 기다린다.
팔로워가 많은 스타일수록, 상반되는 심리 불안장애를 치료받는 스타들이 그 단적인 예이다.
허상은 우리에게 눈을 가리울 뿐, 진실한 친구로 나의 아픈 곳을 어루어 만져 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