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고통의 총량제가 아니라 은혜의 무한제이다.어떤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받을 고통은 그 총량이 정해져 있고 어느 시기에 받던 언젠가는 받게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고통을 많이 받았으면 나이 들어서는 고통이 덜해지고 어려서 고통을 안 받았으면 나이 들어서 고통을 많이 받게 되며 어려서도 나이 들어서도 고통을 많이 받지 않았으면 죽을 때 고통을 많이 받게 되면서 결국에 받을 고통은 언젠가 다 받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설명이 인생의 희노애락과 고단한 삶을 설명하는 데에는 유익할지 모르지만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설명하는 데에는 한없이 해롭습니다. 마치 인생은 고통을 받기 위해서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하고 또한 그러한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만드시고 펼치시는 이유는 그렇게 고통을 받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놀라운 영광과 아름다운 창조의 섭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에 비로소 인생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인생은 적게 살든 많이 살든 하나님의 손길을 받게 됩니다.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한 인간을 다루시고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인생 자체가 하나님의 만드신 걸작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려서부터 시작되든, 혹은 나이 들어서 시작되든, 아니면 죽기 전에 이루어지든 살아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무한대로 주어집니다. 심지어는 그가 악인이든 혹은 선인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악인이라면 그를 참고 견디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고 선인이라면 그를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셔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예술가에게 한 폭의 캔버스는 모든 예술적 감성을 표출하는 장이 되고 한 움큼의 찰흙은 멋진 조소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됩니다. 때로 이런 재료보다 더 다루기 힘든 목재가 있고 석재가 있습니다(톱이 필요하거나 정이 필요한). 하지만 예술가에게는 재료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없습니다. 그것이 한 장의 종이이든지 혹은 한 움큼의 찰흙이든지 아니면 단단한 목재이든지 완전히 딱딱한 석재이든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대리석으로도 조각상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목재로도 멋진 조형물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찰흙은 찰흙 대로 종이는 종이 대로 다 사용해서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술가는 나타내려는 목적에 따라서 일부러 재료를 선택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베푸시는 모든 은혜는 바로 인생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힘들었던 인생이든 평탄했던 인생이든 그 난이도와 상관없이 그 속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놀라우심과 변화시키심의 아름다움이 각각의 인생의 변화와 발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성도는 자신의 삶 속에 그 영광이 나타나기를 원하면서 그 손길에 자신의 삶을 의탁합니다. 그 인생을 다루시고 깎으시며 세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성경을 통해 이전에도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현재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앞으로 다음 세대에도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놀라운 무한한 은혜를 바라보며 어려움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만드시는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은 지금도 나라는 한 사람의 인생 속에 전무후무한 또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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