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좀 거창하지만 사실은 아주 간단한 내용입니다. 상담을 어떤 방향으로 진행할 것인가에 관한 내용입니다. 성경적 상담에서 상담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은 성경적 상담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서 게임중독인 학생을 상담할 때 상담방향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게임을 하게 하는 것으로 해야 할까요, 하지 않는 것으로 해야 할까요?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를 상담할 때 이혼을 하게 하는 방향으로 해야 할까요, 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야 할까요?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 바로 상담의 방향성입니다. 이러한 상담의 방향성에서 성경적 상담은 심리상담과 다릅니다. 심리상담은 상담의 방향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이혼을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괴롭지 않는 것이고 문제가 만족스럽게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결과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적 상담에서 이러한 결과는 큰 문제입니다. 과연 성경적 상담에서 결과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성경적 상담이 성경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에 합치하는가 합치하지 않는가를 도대체 누가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적 상담 법관이라도 있어서 이것은 성경적이다 혹은 성경적이지 않다를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적 상담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어떤 성도나 목회자나 신학자가 성경적 상담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 상담사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판단하거나 혹은 다른 성경적 상담을 판단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실현이 불가능하며 또한 실현이 거부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직 성경적인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만 판단됩니다. 그 하나님의 판단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성경적 상담은 그 내용이 성경적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차대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성경적 상담에서는 상담의 방향성을 결정합니다. 상담사 자신이 결정한 상담의 방향성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방향인지를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 방향성이 맞다고 생각하고 확신할 때에 그 방향성을 피상담자와 함께 나눕니다. 그리고 피상담자가 이 방향성을 따르려고 하는지를 생각합니다. 만약 피상담자가 그 방향성을 거부하고 그 외에 다른 가능성이 있다면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겠지만 다른 가능성을 찾을 수 없고 그 방향성 마저도 거부한다면 성경적 상담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경적 상담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혜를 가지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그의 판결 속에서 솔로몬의 핵심은 그들을 조용히 시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들을 적절히 만족시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은 그들 속에 있는 선과 악을 끄집어 내는 것이었고 솔로몬의 지혜 속에서 솜어져 있었고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가리워져 있던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어떠한 증거도 목격자도 없었지만 진정한 증거와 목격자가 있었고 그것은 바로 진짜 어머니의 타는 듯한 괴로움이었습니다. 솔로몬이 바로 이 진실을 드러냈을 때에 사람들은 비로소 여호와의 지혜가 그 속에 있음을 보았고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성경적 상담은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적 상담이 마음 속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다만 성경으로 드러난 거짓과 위선을 덮는 것이라면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하나님의 지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성경은 모든 부정과 부조리와 거짓과 합리화와 정당화를 방조하는 악한 방법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그 속에 있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속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실을 드러낼 때에 죄인이 자신의 죄를 용서하시는 구세주를 만나게 되며 악인이 그 죄를 중단하기를 바라시는 창조주를 만나게 되며 연약한 자가 그 연약한 마음을 돌이켜서 의를 향하여 담대하게 하시는 보혜사를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상담진행의 방향성이며 우리가 추구하는 상담속에서의 인생의 진실입니다.
그럴 때 성경적 상담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도 드러납니다. 왜 더 이상 성경적 상담을 하지 않았을까요? 감추어진 진실이 드러나기 싫었고 말하고 싶지 않은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았고 바꾸고 싶지 않은 악순환을 바꾸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성경적 상담을 하지 않는 것이고 그럴 때 성경적 상담은 그 모든 의도에 동참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을 합리화하며 정당화하는 상담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드러내고 돌이키게 하려다가 하지 못하는 상담으로 남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러면서 성경적 상담은 미처 드러내지 못한 진실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진실을 드러내었습니다.
이 진실을 향해서 성경적 상담은 오늘도 가장 선한 방향성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성경적 상담사는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는 것과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과 성령님의 힘주시는 것을 힘입어 피상담자와 함께 사랑과 희락과 화평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적 상담진행의 방향성이며 그 방향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성경적 상담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실한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방향 성 속에서 하나님 앞에 서고자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고자 합니다. 오직 이러한 방향성이 존재할 때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펼쳐집니다. 하나님은 성경적 상담을 통해 상담사와 피상담자를 만나주십니다. 가장 올바른 방향을 위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경적 상담의 시간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