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는 안좋은 기억과 경험으로 인해서 고통받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안좋은 기억과 경험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이기도 하고 극심한 슬픔이나 극도의 괴로움을 겪고 난 다음에 과거를 생각하는 틀이기도 합니다. 한번 이러한 트라우마에 빠지게 되면 절벽에서 굴러 떨어진 것 같이, 혹은 깊은 구덩이에 빠진 것 같이 헤어나올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해야 그 괴로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배우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괴로워하던 한 성도님은 그 괴로움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료적인 치료를 좀더 잘 받았도록 노력했다면 어땠을까라는 후회와 그 당시 의료진에 대한 분노감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또한 평상시에 좀더 잘해줄 걸 그랬다는 죄책감도 계속 듭니다. 생각이 안나는 때가 없을 정도로 매 순간 순간 배우자의 빈자리가 생각나서 괴롭습니다. 그럴 때에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알고 싶지 않고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 가지 괴로움이 한데 뭉쳐서 이렇게 해도 안되고 저렇게 해도 안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의료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생활적인 문제가 생각나고 생활적인 문제가 생각나며 신앙적인 문제도 어렵게 느껴지고 신앙적인 문제에서 어려움을 느끼면 다시 의료적인 문제로 되돌아가는 악순환이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그렇게 시간이 오래 흐르고 나면 몸과 마음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각각의 문제가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괴로워하는 문제가 어떤 영역의 문제인지를 살피고 각 영역의 문제에서 그 문제 하나만 짚어가야 합니다. 아예 생각을 안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면 그 골짜기에 구덩이에 계속 사로잡히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말 필요하고 유익한 생각을 해서 그 감정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각 영역의 문제를 구분하고 그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파악한 뒤 자꾸 굴러떨어지게 되는 감정에 강한 제한을 걸어서 더 이상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잡고 올라와야 합니다. 그런 다음 외부로부터 내려지는 줄을 찾아야 합니다. 내부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방법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생각과 외부로부터 오는 도움을 기대할 때 비로소 그것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을 붙들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잡고 나오면 결국에는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그 성도님은 의료적인 문제의 한계를 직시하게 했을 때 그것이 유전적인 질환을 막을 수 없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생활적인 문제의 죄책감을 직면했을 때 아무리 잘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막상 그 상황이 되면 다시 원래대로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찾고자 소망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성도님은 마침내 괴로움의 깊은 심연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사실 그분은 어디에도 빠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실제 존재하는 물리적인 한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만든 심적인 분노와 죄책감과 미움의 벽일 뿐이었습니다. 스스로 그 벽을 허물 수 있었을 때 그의 삶은 빛을 찾을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고통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 괴로움은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 하나 그 실체를 잘 들여다 본다면 자신이 찾지 못했던 트라우마 이면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실과 간절한 바램을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