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직장은 매일 '버텨내야 하는 전장'과 같습니다. 사람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섞여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저를 숨 막히게 합니다. 말 한마디를 내뱉을 때도 상대의 기분과 상황을 수만 번 계산해야 하니, 이제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피곤하고 귀찮습니다. 잘해도 본전, 못하면 비난받는 그곳에서 남을 흉보는 소리까지 들어주다 보면 제 에너지는 바닥이 나버립니다. "식사하셨어요?" 같은 의미 없는 안부조차 하기 싫어지는 날엔, '오늘은 또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하나' 하는 불안감이 저를 덮칩니다.
이상하게도 일회성 알바를 할 때는 마음이 편합니다. '마음에 안 들면 안 오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긴장은 돼도 불안하진 않거든요. 하지만 계속 얼굴을 봐야 하는 관계는 다릅니다. 몸은 이미 지쳐서 에너지를 아끼고 싶은데, 동료가 말을 걸어오면 대답할 생각에 한숨부터 나옵니다. 면접을 준비할 때도 그랬습니다. 누군가를 이해시키고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저를 짓누르고,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늘 긴장과 불안 속에 살고 있습니다.
몸의 통증은 아주 어릴 때부터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고3 때 류마티스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만 해도 저는 담담했습니다. 하지만 대학 편입 후 우연히 보게 된 관련 논문들이 제 세상을 무너뜨렸습니다. 논문에 적힌 환자들의 통계와 삶의 모습이 바로 나의 미래라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졌을 때, 저는 억울함과 서러움에 목놓아 울었습니다. '나는 절대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하며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결국 이 병이 내 인생을 망치겠구나'라는 절망이 불쑥불쑥 고개를 듭니다. 잘 살고 싶어 애를 쓸수록, 병이라는 장애물은 더 크고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소원상담센터, 윤홍식 목사, 기독교 상담센터,마음근원 성경적 상담.
선순환 사고로 삶을 세우는 소원상담센터,미국 웨스트민스터의 마음근원 성경적 상담의 원리에 따라 '선순환 사고로 삶을 세우는' 기독교 상담교육기관.
삶 속의 가정문제, 대인관계, 자녀문제, 부부갈등, 우울증, 중독, 강박증, 공황장애, 트라우마 등의
인생문제와 위기문제와 정신문제를 선순환 사고로의 전환을 통해
정신과 약물을 대치하면서 신피질의 통합된 생각을 하게 하는 상담과 교육.
*주요상담원리:
1문제의 영역을 구분하라, 2문제의 유형을 분별하라, 3문제 속에 있는 감정을 파악하라, 4감정 속에 있는 욕구를 이해하라
5욕구를 넘어서는 소원을 찾으라, 6소원을 통한 결심을 세우라, 7결심을 나타내는 실천을 행하라, 8실천으로 이루는 변화를 완성하라
직장 동료들과 나누는 일상적인 인사가 전쟁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편안함만을 고집하며 관계를 ‘에너지 소모’로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평가에 자신의 가치를 두게 되면 관계는 피곤한 짐이 되고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됩니다. 따라서 자신의 가치를 타인의 시선이 아닌 ‘진리의 말씀’에 두고 정직하게 말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이 필요해요. 매일 마주치는 동료를 나를 공격하는 적군이 아닌 사랑하고 섬겨야 할 소중한 지체로 새롭게 인식해 보시기 바랍니다.
'욕심쟁이 거인'은 자신의 정원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담을 쌓고 아이들을 쫓아내어 정원에 영원한 겨울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는 자신의 정서적 편안함만을 고집하며 동료를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적'으로 인식하여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거인이 담장을 허물고 아이들을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정원에 봄이 찾아왔듯 동료를 위협이 아닌 사랑할 지체로 수용할 때 고독한 전장은 생명의 정원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상대방의 기분이 어떨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이렇게 끊임없이 계산하며 인사조차 에너지 낭비라고 여기는 소모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실 누군가가 미워지거나 거부감이 드는 것은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쉬고 싶은 '편안함'에만 집착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런 욕구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대화하는 그 현장 속에 함께 동행하시는 주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으면 동료가 더 이상 내 에너지를 빼앗는 존재로 보이지 않게 되고 지혜롭게 감정과 피로를 조절하며 건강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성경 속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많은 준비로 분주했지만, 자신의 기대대로 상황이 흐르지 않자 원망과 불안에 사로잡혔습니다. 모든 사람의 기분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은 몸의 통증과 미래에 대한 절망을 더욱 무겁게 만들 뿐입니다. 주님이 마르다에게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다"고 하셨던 것처럼 하루에 한 번 동료의 안부에 대해 '계산하지 않은 짧은 미소'로 응대하거나 따뜻한 목례를 실천해 보세요. 대화의 압박에서 벗어난 자유함 속에서 성숙한 인격적 변화를 이룰 수 있을 거예요.
개인의 심층적 절망(우울증)은 직장에서의 관계적 피로(불안증)를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직장 불안증과 개인 우울증은 따로 생각해서 각각 해결해야 중요한 선순환을 계속 이어갈 수 있습니다.
과거 대학 시절 마주했던 류마티스 질병에 대한 비관적인 논문 통계들이 미래를 망치고 눈물짓게 했던 극심한 고통이었음이 깊이 이해됩니다. 하지만 통계 수치나 의학적 예후를 절대적 결말로 수용하지 않고 객관화하는 것이 필요해요. "이 병이 내 인생을 망칠 것"이라는 파국적이고 극단적 사고 대신 이 힘든 상황조차 선한 시나리오를 쓰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맡겨드리며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환자'라는 역할에 스스로를 가두며 함몰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고통의 과정을 성실히 통과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사역의 주인공’으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해 나가는 것이에요. 사실 절망하는 이유는 질병으로 인해 남들에게 뒤처지거나 가치 없게 보일까 봐 걱정하는 ‘존경받고 싶은 욕구' 때문입니다. 그 마음을 내려놓고 연약한 모습 그대로도 누군가를 위로하는 선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신뢰해 보세요.
잘 살고 싶어 애를 쓸수록 병이라는 장애물이 더 크고 서럽게 다가오곤 합니다. 하지만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질병의 통계 수치가 아니라 고난 한복판에서도 생명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지금 자신을 채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내면 깊은 곳에서 샘솟는 진짜 기쁨을 만날 수 있어요. 고통을 소망으로 바꾸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어릴 때부터 괴롭혔던 만성 통증과 정신적 피로 때문에 힘겨운 날이 많겠지만, 하나님은 이 고통을 통해 선을 이루시는 주권자임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데이터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충만한 은혜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이제는 치유라는 결과에만 매달리기보다 매일 저녁 통증 속에서도 내가 오늘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감사 리스트 3가지 작성하기'를 실천해 보세요. 질병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며 이 고난 속에서도 분명하고 아름다운 목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가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