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을 주제로 하는 많은 상담집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집회들에서 항상 사용하는 '회복'이라는 주제는 언제나 듣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이 회복될 것 같은, 치유될 것 같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실제로 그러한 집회에 참여하신 분들이 강의를 통해 세미나를 통해 혹은 실습을 통해 회복되었다고 하는 치유되었다고 하는 최소한 좋았다고 하는 반응들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커다란 허점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회복이나 치유를 주제로 하는 접근법이 심리학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근본적으로 회복이나 치유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치유, 마음의 회복은 사실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심리학에서 만들어낸 허상일 뿐입니다
그러한 허상을 만들어 낸 이유는 심리학적인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런 근거를 대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쉽게 그 허무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상처를 받았고 연약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인생살이에 있어서 과연 과거에는 정말 완전하였던 것일까요? 만약 그랬었다면 사실 상처받을 일도 없고 연약하게 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상처를 주는 연약하게 하는 어떤 자극이 없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그 모든 일을 일으키시고 다스리시며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기 보다는 모든 결과를 다른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일 뿐입니다. 마음의 문제는 몸의 문제와 달라서 원래부터 마음 속에 있던 연약함과 근본적인 문제성향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형편속에서 겉으로 드러나게 되었던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마음의 문제의 어려움에 대한 올바른 접근법은 '변화'입니다. 피상담자를 변화시키는 것이 현재 겪고 있는 모든 괴로움을 이기게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말그대로 회복과 치유를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겠지만 변화를 위해서라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왠만한 사람이라면 다들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러한 변화의 어려움을 알기에 변화를 애써 주장하기보다는 차선책으로 회복이나 치유같은 덜 자극적인 목표를 내세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의지하기 보다는 적절히 인간적인 방법이나 기술로 아픔을 해결하려고 할 것입니다.
여하튼 마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치유와 회복 등으로 상담의 목표를 중화시키고 약화시킬 것이 아니라 진정한 목표인 하나님 안에서의 변화로 온전한 상담의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사람들에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